“신랑 신부 마주보고 무릎꿇고 앉아서 맹세하세요”
지금껏 보아온 결혼식중 단연 최고의 결혼식이었어.
“신랑 신부 마주보고 무릎꿇고 앉아서 맹세하세요”
지금껏 보아온 결혼식중 단연 최고의 결혼식이었어.
결혼식이 끝나고 무려 스무명이 넘는 친척들이 오랜만에 우리집에서
서로서로 포개어 잠을 자며, 노래방과 술잔으로 밤을 지세웠다.
유부남 삼부자
할머니 어디보세요?
얘… 과연 결혼하면 철들수 있을까?ㅎㅎ
부산에서 올라온 승용이형 딸 채연이. 부쩍 커서 수즙음도 타고…
이째이모(나를 제일? 좋아하시는 둘째이모 – 난 항상 이렇게 부르곤 한다)와
손주 성현이 – 이녀석도 쑥쑥 크는 중
짐니, 함창 고모할머니 – 할아버지 돌아가시곤 이제 두 분만 남으셨다.
그중 막내(짐니)고모 할머니가 할아버지랑 붕어빵 형제
(어려서부터 몇째 몇째 하지 않고 사시는곳의 이름으로 고모할머니를 불러와서…)
원영이와 큰외숙모 – 원영이는 사실 외사촌이다 🙂
(원영이가 “이 사진 잘나왔다고 꼭 올려달라”는 부탁은 받지 않았다)
성현이와 둘째 형수님
(난 친가쪽은 나랑 동욱이 뿐이라서, 외사촌/이종사촌이 제일 가까운 친척들)
성현이와 정원이
무슨일 있을때마다 도와주시는 종환형님-6촌 애기 정원이
잘먹고, 낯가리지 않고.. 건강히 무럭무럭 자라렴
삼춘! 뭘 봐~ 이건 내꺼야.
정원이 구연 동화 중
@ D200/18-75, 강남웨딩문화원/신림동, 2006
항상 서로 위하면서 즐기며 사는 부부가 되기를…
From 동생에게 항상 미안한 맘뿐인 형
photo by 호준이형
고등학교 친구이자 거대한 덩치에 걸맞지 않는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 민영기
넓직한 이마를 두드리며 5천원어치 떡볶기 오뎅을 사준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순수함이 오랜 시간동안 연애를 거쳐 드디어 결혼에 골인하다. 그것도 신랑이 축가를 부르며.
이 두 명의 신랑/신부는 대학/대학원 동기들로, 심지어 대학원 연구실 동기 세 명 중 두 명이다. (나머지 한명은 당연히 나) 졸업하고 나서 조용히 만나더니 덜컥 결혼을 해버린… 세 명중 하나였던 내가 왠지 이 둘을 결혼시키는것 같은 생각이 드는건 왜 그럴까. 흐뭇하다고나 할까.
(2005.11월에 결혼해 이 글을 쓰는 지금 (2006.09)월에 이 부부는 아빠 엄마를 절반씩 닮은 예쁜 딸을 낳았다.)
미정이도 알고 지낸지 꽤나 오래됐구나…
행복하게 명랑하게 잘 살기를~
증거사진 by somebody
“가난한 자를 위한 몰디브”란 말을 듣고 있는 필리핀 팔라완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마음은 몰디브지만 “시간관계상” 필리핀으로. 나중에 아이의 손을 잡고 여유있게 몰디브엘 가자는 다짐을 하고 필리핀행 비행기에 몸을 싣다.
저녁 결혼식에, 간단히 친구들과 맥주 한잔하고 호텔에 들어선 시각이 새벽 1시. 3시간 정도를 자고 그 비싼 호텔비를 내고 (친구들이 잡아줬다고) 새벽을 가르며 공항에 도착.
필리핀 마닐라에서 가이드와 만나 늦은 점심을 먹고, 호텔에 짐을 풀고, 근처 카지노엘 갔다. 아내는 카지노가 처음이고, 나는 라스베가스 출장때 한번 가본 (이때 25센트 슬롯머신에서 100여불을 땄다는 -.-v) 적이 있었는데, 우린 돈을 따는게 아니라 카지노를 즐기자는 마음에 일인당 만원? 정도씩을 바꿔 이 돈을 다 잃을때 까지 이것저것 해보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필리핀 국내선을 타고 팔라완으로 들어가려는데, 가이드가 “가끔 고장으로 비행기가 늦어지기도 하니까 걱정말고 다녀오세요. 제일 늦은적이 3시간인데.. 딱 한번 그랬어요”란다. 그렇다. 우린 그날 3시간 반을 공항에서 비행기가 출발하기만 기다렸다. 탔다 내렸다, 탔다 내렸다, 탔다. 이제야 출발한다. “하하. 우리가 그 기록을 깼네~~!!”
팔라완 공항은 어이없다, 귀엽다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비포장 활주로다. 그렇다. 비포장이다.
하늘에서는 그냥 길인줄 알았던 그곳이 비행장이다. 드드드드드드…. 흙먼지와 함께 무사히 비행기가 멈추고, 나뭇잎으로 엮은 조그만 공항은 대부분 우리가 묵을 클럽 노아 이사벨 리조트로 가는 사람들이었고, 리조트에서 마중나온 가이드를 따라 미군 짚차를 개조해 만든 지프니(버스)를 타고, 다시 방카(배)를 타고 리조트에 들어갔다.
마닐라에서 다시 가이드와 만나 피나투보 화산 트래킹을 하고 (음.. 별로였다) 쇼핑을 하고 (으례 신혼여행에는 양가 선물을 무척이나 빠방하게 한다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30살의 그녀”와 “31살의 그”가 2006년 8월 26일에 결혼하다.
각자 살아온 시간보다 함께 살아갈 시간이 더 많은, “가족”으로서의 첫발을 어느 무더운 8월 저녁에 내디뎠다.
그 날 새벽 다짐이 눈 감는날까지 변하지 않도록… 결혼 1년 후의 오늘에 다시한번 다짐한다.
참 많이도 다른 두 사람, 참 많이도 비슷한 두 사람…
더 이상 두사람이 아닌 “우리”, “부부”로 하나되어 1년간 살아온 하루 하루를 되짚어 보면
“하나”가 되기 위한 많은 아픔과 다툼과 시행착오와 함께 지금의 1년된 부부로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 몇 년이 지나야 이가 잘 맞는 톱니바퀴처럼 꽉 물려서 돌아갈 수 있을까.
31년을 같이 살아온 가족들에게서 느끼는 편안함과, 아직도 알 수 없는 부모님의 마음을 되돌아 보면,
평생을 같이 살아도 모르는게 부부라는데… 설령 꽉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조금씩 서로의 바퀴에 홈을 파내어 맞춰가다 보면 잘 돌아가는 하나의 톱니바퀴가 완성되어 가지 않을까.
이제는 “30살의 그녀”가 아닌 “1년차 아내”로 “31살의 그”가 아닌 “1년차 남편”으로 후회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갈것을 되세긴다…
눈감는 날까지.
ps) 위독하신 할아버지를 위해 서둘렀던 결혼인데, 이 날 할아버지는 큰손주 결혼식이라고 독하디 독한 진통제를 맞으시고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신체 저렇게 즐거워하고 계신다. 이 날이 사진으로 남은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다.
평소 사진찍기를 좋아하지만, 찍히는 경험이 거의 전무한 나로서는
“신랑님~ 입을 약간 벌리고, 이를 살짝 보이면서.. 그렇지~ 웃음~ 웃음~!”을 요구하는
사진가의 주문이 마냥 어색하기만 했고, 내 스튜디오 수업에 모델로 참여해준 희연이는
자연스런 포즈와 표정으로 마냥 즐거워하면서 촬영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