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wedding ceremony

“30살의 그녀”와 “31살의 그”가 2006년 8월 26일에 결혼하다.
각자 살아온 시간보다 함께 살아갈 시간이 더 많은, “가족”으로서의 첫발을 어느 무더운 8월 저녁에 내디뎠다.
그 날 새벽 다짐이 눈 감는날까지 변하지 않도록… 결혼 1년 후의 오늘에 다시한번 다짐한다.

참 많이도 다른 두 사람, 참 많이도 비슷한 두 사람…
더 이상 두사람이 아닌 “우리”, “부부”로 하나되어 1년간 살아온 하루 하루를 되짚어 보면
“하나”가 되기 위한 많은 아픔과 다툼과 시행착오와 함께 지금의 1년된 부부로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 몇 년이 지나야 이가 잘 맞는 톱니바퀴처럼 꽉 물려서 돌아갈 수 있을까.

31년을 같이 살아온 가족들에게서 느끼는 편안함과, 아직도 알 수 없는 부모님의 마음을 되돌아 보면,
평생을 같이 살아도 모르는게 부부라는데… 설령 꽉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조금씩 서로의 바퀴에 홈을 파내어 맞춰가다 보면 잘 돌아가는 하나의 톱니바퀴가 완성되어 가지 않을까.

이제는 “30살의 그녀”가 아닌 “1년차 아내”로 “31살의 그”가 아닌 “1년차 남편”으로 후회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갈것을 되세긴다…

눈감는 날까지.


결혼식 하러 나서는 길












ps) 위독하신 할아버지를 위해 서둘렀던 결혼인데, 이 날 할아버지는 큰손주 결혼식이라고 독하디 독한 진통제를 맞으시고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신체 저렇게 즐거워하고 계신다. 이 날이 사진으로 남은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다.

@ by seedar, hongth, studio-ray, 2005

2005, 웨딩촬영

2006.7월 웨딩촬영 (청담동 스튜디오)

평소 사진찍기를 좋아하지만, 찍히는 경험이 거의 전무한 나로서는
“신랑님~ 입을 약간 벌리고, 이를 살짝 보이면서.. 그렇지~ 웃음~ 웃음~!”을 요구하는
사진가의 주문이 마냥 어색하기만 했고, 내 스튜디오 수업에 모델로 참여해준 희연이는
자연스런 포즈와 표정으로 마냥 즐거워하면서 촬영했었다..










희연이와 처음 만난 BnO 모임 사람들과 함께

@ by studio-ray, 2005

Neowizen

“더 늦기 전에 해보고 싶은일을 하고 싶어요”
바쁘고 프로젝트 진행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많았지만, 많은것을 배우고, 큰 일을 책임지고, 끝낸 일에 대한 성취감또한 컸던 이전 회사 매니저에게 한 말이다.

그리고 네오위즈로 옮겼다.
서비스제공.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내 생각의 한 가운데 자리잡은 나의 지향점과 같은 일이다. 대규모 서버를 사용하여 모든 사용자 삶에 도움이 되는 그런일을 하고 싶다. (그게 무언지는 아직은 잘 모르지만…) 그걸 하고 싶어서 시스템 운영팀으로 옮겨서 개발과 운영의 중간에 서서 큰 그림을 보고 싶었다.

모든 회사에 장단점이 있지만, 네오위즈는 내가 겪어보지 못한 자유로운 문화 (장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는 양날의 검)를 경험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는 시스템과 실력있는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기억을 갖게되어 많은걸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한 내 운을 증명이라도 하듯, 네오위즈 입사 부터 조직개편, 세이클럽 축소, 동료이탈, 게임회사로 변신 등등을 겪으면서, 여전히 좋은 (다양한 의미의) 회사임에 분명하지만 내 carrier와는 다른 방향으로 회사는 움직이고 있었고, 그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자리를 옮기게 되었고, 개발 분야를 변경해 볼 생각까지 갔었지만, 결국엔 10개월만에 좀 더 나에게 전문적인, 내가 좀 더 잘할 수 있는 분야로 다시금 옮기게 되었다.

좋은 장소, 좋은 기회에 다시금 볼 수 있기를.

10개월간 시스템기술팀 -> 시스템팀 인프라채널 -> 시스템팀 파란만장하고나.



@ D200/24-85G/35, 네오위즈, 2005/2006

2005, 어머니와의 여행


결혼을 앞두고 장남을 장가보내는 적적한 마음의 어머니와 함께한 당일 코스 여행.
어머니의 소녀적 추억이 담긴 “수덕사”엘 가기로 했다. 비가 오는 2005년 어느 7월 여름날.

잠시 짬을 내어 종종 모시고 다닐걸… 하는 후회를 항상 하는 못난 아들아.

선글래스도 사드려야 하는구나.. ㅎㅎ
결국 지난주에 근사한것으로 하나 장만해드림 🙂

@ CoolPix 3700, 수덕사, 2005

연애시대

언젠가는 변하고, 언젠가는 끝날지라도,
그리하여 돌아보면 허무하다고 생각할지라도
우리는 이 시간을 진심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슬퍼하고 기뻐하고 애달아하면서 무엇보다도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고통으로 채워진 시간도 지나고, 죄책감없이는 돌아볼 수 없는 시간도 지나고,
희귀한 행복의 시간도 지나고, 기억되지 않는 수많은 시간을 지나,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우리는 가끔 싸우기도 하고, 가끔은 격렬한 미움을 느끼기도 하고,
또 가끔은 지루해 하기도 하고, 자주 상대를 불쌍히 여기며 살아간다.
시간이 또 지나 돌아보면 이 때의 나는 나른한 졸음에 겨운듯 염치없이 행복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가 내 시간의 끝이 아니기에 지금의 우리를 해피엔딩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연애시대 마지막 대사 中>

어차피 처음부터 “해피엔딩” 따위는 전혀 계획되지 않은듯 하다. 처음 시작부터 결말은 예고되었고, 그 뻔한 결말의 끝은 마치 아다치 미츠루 만화 H2의 마지막 장면이 그러하듯이 그렇게 한 장면씩 표현되었다.

이 드라마는 “헤어진 부부의 재 결합기”가 아니다. 헤어진 부부를 통해 사랑하는 상대를 보는 눈과, 그 둘과 연관된 또 다른 “우리”의 모습을 경쾌하고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주옥같은 대사도 눈물겨운 드라마도 뛰어난 영상미도, 드라마 내내 받침돌이 되어준 “너와 나”, “그와 그녀”의 이야기에는 단지 하나의 장식에 불과했다.

마지막 장면은 시간이 지나 5년 후의 지금을 살고 있는 그들의 특별하지 않은 일상뒤로 조곤조곤한 나레이션과 함께 끝이난다.

드라마의 좋은점 나쁜점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이 드라마는 내 친구의, 나의, 내 부모님의 이야기 일지도 모르기에 훗날 시간이 지나 여전히 해피엔딩으로 한걸음씩 다가가는중에 다시 한번 꺼내어 보고 싶은 그런 드라마다.

설악산 여행

결혼 전 와이프를 만난 BnO (지금은 모임에 이름을 쓰지 않지만…) 모임 사람들과 생일 파티를 겸해 설악산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이 모임에서는 생일자가 저녁을 대접하고 선물을 받는 건전한? 문화가 있는데, 이 해에는 5월 근방 생일자 4명이 모여 여행을 준비했었다.
등산이 아닌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 유람 및 공원내 신흥사 산책







@ F80D/24-85G, 설악산, 2005

만약에 우리

그때 너를 그냥 지나쳤다면
우리 지금 더 행복했을까
아직도 믿고 싶은 내 사랑 속에는
언제나 처음 같은 내 모습이

그땐 뭐든 둘이었는데
이젠 모두 다 하나뿐이야
지금도 비어있는 내 맘 한자리
다시는 없을것 같은 그 사람

가끔 나 바람에게서
너를 만질수 있어
어느새 너무 멀리 간 너를
이렇게만 만날 수 있어

만약에 우리 이별도 사랑인줄 알았다면
우리 눈물도 행복인 줄 알았다면
다시 못 올 시간인 줄 알았다면
조금더 기다릴 수 있었다고

단한번도 내 마음 모두 주지 못해
미안해
사랑해

조금 늦게 너와 마주쳤다면
우리 오래 더 사랑했을까
아직도 찾지 못한 내 사랑속에는
언제나 거울같은 내 모습이

그때 우리 더 사랑했다면
지금 우린 더 행복했을까

– 만약에 우리 (연애시대 OST) by 진호

2005, 제주도 – 마라도

국토 최남단, 조그만 섬, 어느 광고의 한장면.
이게 내가 알고 있는 마라도의 전부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첫 배를 타려 모슬포 여객항으로 가는 길은 약간 흐린 여행하기 딱 좋은 그런 날씨였다. 배를 타고 남서쪽으로 가파도를 지나 마지막 마라도. 배가 가파도 옆을 지나자 파도가 엄청났다. 선장의 “오늘은 바람도 많고, 특히나 가파도 근처는 물살이 세서 배가 좀 흔들릴것이다”는 말에 배는 금세 하늘과 바닷속을 넘나들듯이 앞뒤로 흔들리고, 손잡이를 꽉 붙잡지 않는 이상 서 있기 조차 힘든 그런 파도였다. 아마도 지금껏 타본 모든 배 (레프팅을 포함해서) 중에 가장 스릴있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마라도 짜장면집 콜리

마라도에 도착하자, 낚시대를 든 사람들과 당일 여행객들로 붐볐다. 아침에 배를 타고 들어와 오후에 나가는게 마라도 관광의 전형이라고 한다. 사실 천천히 쉬엄쉬엄 걸어도 한시간이면 섬을 한바퀴 돌 수 있고, 회나 유명한 마라도 짜장면 (해물을 조금 넣고, 약간 매운 마라도식 자장면인데, 인기를 끌자 마라도 내 몇곳에 더 생겼다고 한다)을 먹고도 두시간이면 넉넉하게 즐기다 나올만한 곳이었다.



나는 하루를 묵으면서 낚시도 하고 쉬엄쉬엄 다니려 숙소부터 구했다. 4월은 그래도 비수기인지라 방은 모두 비어있었고, 나는 미리 인터넷에서 찾아본 횟집 + 민박을 겸하는 곳에서 짐을 풀었다. 맘씨 좋은 주인 아저씨는 요즘이 낚시철이 아니고 지금 (정오가 다 되어가는 땡볕)은 물때가 아니지만 저~ 쪽 가면 혹 모르겠다며 잡은 고기를 담아올 그릇과 몇가지를 챙겨주신다. 5-6시쯤 같이 낚시나 하러 가자시면서…



땡볕에 앉아 흔들리지도 않는 낚시대를 멍하니 바라보다 다시 들어와 쉬다가 아저씨와 낚시를 하러 갔다. 아저씨의 갯바위용 낚시 신발도 빌리고, 마라도에서나 쓸 수 있다는 골프카트(여기선 자동차보다 이게 더 유용해 보인다)를 타고 선착장 근처로… 마라도는 손바닥 보다도 작은 자리돔이 유명한데, 주로 배를타고 그물로 잡는다고 한다. 아직 수온이 낮아서 고기가 없다는 말 때문인지.. 이날도 한마리도 못잡고, 결국 아저씨게 회를 만원어치 사서 아저씨 아주머니와 같이 먹고, 아저씨가 쏘신 삼겹살에 소주와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밤을 보냈다.



다음날 마라도를 나와서 서울로 돌아가려 아침일찍 일어나 보니.. 비바람이 엄청났다. 제주보다 더 바람이 많다는 마라도니까 엄청나겠군요.. 하고 있는데 아저씨는 “배가 뜰라나 모르겠네…” 라신다. 헉~!
서울로 오늘 꼭 가야하는건 아니지만.. 태풍이나 이런거 오면 몇일씩 발이 묶이는 경우도 있다시며 가서 배편을 확인해보라고 하신다. 10시에 맞춰 첫배를 타려 나갔는데, 다행히 아침 첫배가 관광객을 싣고 와있었지만… 호우주의보가 발동되서 배가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마냥 기다려보란다. 헉헉~!
결국 다행히도 오후 3시쯤 배가 다시 나갔고, (이 배가 그날 유일하게 들어온 마라도 배였다) 엄청난 빗속을 뚫고 비행기를 타고 다시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다.

@ F80D/24-85G, 마라도,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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